우연이 만들어 준 뜻밖의 선물

# 풍경 사진을 찍을 때 골든아워를 활용하라고 합니다. 골든아워는 해가 뜨고 난 후, 그리고 해가 지기 전 한시간가량을 말합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노랗게 물드는 시간이죠. 하루 중 세상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할 때입니다. 사진가들은 이 시간의 빛을 노립니다. 

# 사진가와 빛은 가깝지만 먼 관계입니다. 사진가는 늘 빛을 쫓지만, 빛은 잘도 피해 다닙니다. 자연은 우리의 의도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그러다 때론 생각지 못한 순간에 빛이 찾아와 주기도 합니다. 사진 속 이날도 빛이 불쑥 찾아온 몇 안 되는 하루였습니다. 

# 비 예보가 있던 날입니다. 하늘은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얼굴입니다. 빗방울을 쏟아낼 것 같던 구름은 조금씩 흘러갑니다. 어느덧 퇴근길입니다. 사람들의 손에는 우산이 하나씩 들려 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그때입니다. 갑자기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해가 지는 쪽으로 하늘이 열렸나 봅니다. 회색빛의 무표정한 구름이 순식간에 붉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전화 통화를 위해 잠시 밖으로 나온 사이 펼쳐진 풍경입니다.

# 마음이 급해집니다. 가로수에 막혀 하늘이 보이질 않습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횡단보도를 찾아 신호를 기다립니다. 신호는 왜 이렇게 안 바뀌는지, 다리는 본능적으로 제자리뛰기를 합니다.

길을 건너 최대한 하늘이 보이게 쭈그리고 앉아봅니다. 하늘은 석양빛으로, 땅은 자동차의 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거짓말처럼 하늘은 다시 어두운 회색빛으로 저녁을 맞이했습니다. 

#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세상은 계획대로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나 봅니다. 마침 그 시간에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다면, 손에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이 풍경을 담아낼 수 없었겠지요. 우연이 만들어 준 선물, 오늘은 여러분을 찾아갈지 모릅니다. 사진 속 이날처럼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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