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카너먼처럼 생각하기
단순함 속에 든 커피의 정수
네슬레 인수 후에도 원칙 고수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 브랜드 ‘블루보틀’의 로고는 애플과 비교되곤 합니다.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어서죠. 그런데 단순한 브랜드로 승부를 거는 건 화려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단순함을 채울 만한 ‘그 무언가’가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블루보틀의 정체성이 들어 있는 ‘심심한 파란병의 비밀’을 풀어본 이유입니다.

블루보틀은 간결한 메뉴를 한가지 사이즈로 제공해 왔다.[사진=뉴시스]
블루보틀은 간결한 메뉴를 한가지 사이즈로 제공해 왔다.[사진=뉴시스]

바쁜 일상에서 커피 한잔이 가져다주는 위안은 작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나만의 커피전문점을 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죠. 커피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커피전문점 종사자는 지난 3년 새 7만명가량(2016년 15만2523명→2019년 22만4328명)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창업은 ‘로망’이 아닌 ‘현실’입니다. 커피전문점 폐업률이 매년 10%대를 웃도는 건 창업의 냉혹한 현실을 상징하는 통계입니다. 

치열한 시장에서 나만의 커피 브랜드를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 브랜드 ‘블루보틀커피(이하 블루보틀)’는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17㎡(약 5평)에 불과한 임대료 600달러(약 76만원)짜리 작은 창고에서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커피 브랜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죠. ‘카너먼처럼 생각하기❸ 블루보틀 2편’에선 앞서 소개한 ‘완벽주의’에 이어 블루보틀의 또다른 ‘성공 DNA’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블루보틀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함’입니다. 블루보틀의 로고는 글자 그대로 ‘파란 물병’ 하나가 그려진 게 전부입니다. 이런 콘셉트는 매장 인테리어나 제품 패키지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음료 메뉴도 간결합니다. 블루보틀은 음료 메뉴를 6~8가지로 간소화하고 사이즈도 한가지(335mL)로 통일했습니다. 수십개 메뉴를 쇼트·톨·그란데·벤티 등 다양한 사이즈로 제공하는 스타벅스와 비교되는 전략이죠.[※참고: 한국의 경우 음료 메뉴는 16가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블루보틀의 성공을 ‘미니멀리즘’ 전략 덕분이라고 말하는 건 결과론에 불과합니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단순함으로 성공을 거두는 건 화려한 마케팅 전략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브랜드가 가진 가치와 생각, 콘셉트가 드러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해서입니다. 

블루보틀이 미국 스페셜티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블루보틀이란 브랜드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블루보틀과 함께 스페셜티 커피 ‘3대 브랜드’로 꼽힌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스텀프 타운(Stump town)’과 비교하면 블루보틀은 너무나 심심해 보였기 때문이죠.

일례로 인텔리젠시아의 로고는 화려한 양쪽 날개와 커피잔, 별로 이뤄져 있습니다. 스페셜티 시장에 ‘루키’ 탄생을 예고하는 듯한 브랜드였죠. 그에 비하면 블루보틀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그저 얌전한 브랜드로 비쳤습니다. 

이런 블루보틀이 가장 트렌디한 브랜드로 우뚝 선 건 눈에 보이는 단순함 안에 ‘최고의 커피’라는 정수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블루보틀이 추구하는 업業의 본질이나 진정성이 없었다면 단순함은 그저 ‘가벼움’에 그쳤을지 모릅니다. 블루보틀이 ‘커피계 애플’이라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네슬레는 2017년 5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4억2500만 달러(약 5461억원)에 인수했다.[사진=뉴시스]
네슬레는 2017년 5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4억2500만 달러(약 5461억원)에 인수했다.[사진=뉴시스]

흥미로운 건 블루보틀의 미니멀리즘이 ‘환경’이나 ‘지속가능성’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점입니다. 블루보틀은 환경을 파괴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대량생산하는 커피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커피를 오랜 기간 환경적 책임을 다한 생산자로부터 직접 공급받죠. 품질이 뛰어난 커피를 받을 땐 공정무역 커피 수준의 합당한 가격을 지불합니다. 생산자와 지속가능한 상생을 꾀하기 위해서입니다. 

‘빠른 것’ ‘많은 것’과는 거리가 먼 블루보틀의 단순함이 지금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질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담보해주고 있는 셈입니다.[※참고: 공정무역 커피는 다국적 기업이나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제3세계 커피 농가에 합리적인 가격을 직접 지불해 사들이는 커피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블루보틀이 아무런 위기 없이 승승장구해온 건 아닙니다. 2017년 블루보틀은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에 인수됐는데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네슬레는 블루보틀의 지분 68.0%를 4억2500만 달러(약 5461억원)에 인수했습니다. 당시 매장이 50여개에 불과했던 블루보틀로선 어마어마한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덴 성공했지만, 이는 ‘양날의 검’과 같았습니다. “블루보틀이 자본(네슬레)에 굴복했다” “블루보틀이 영혼을 팔았다” “가장 좋아한 독립 로스터를 잃었다”…. 블루보틀이 상업화할 것을 우려해 실망한 소비자가 많았죠. 

하지만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네슬레에 인수된 이후에도 블루보틀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네슬레의 인수는 되레 블루보틀의 또다른 성공 DNA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블루보틀이 네슬레로부터 “블루보틀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에야 딜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돈’보다 ‘정체성’을 앞세운 게 신의 한수가 됐던 겁니다. 블루보틀은 모회사인 네슬레 덕분에 한국·홍콩 등 해외 시장에 더욱 수월하게 진출했지만 여전히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추구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블루보틀처럼 타협하지 않고 정체성을 고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칙을 지키는 건 가시밭길을 가듯 어렵고, ‘쉬운 길로 가라’는 유혹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블루보틀의 길은 우리나라의 젊은 창업자들이 벤치마킹할 만합니다. 

블루보틀의 성공 법칙을 통해선 대니얼 카너먼의 이론도 찾을 수 있습니다. 카너먼은 사람의 생각 체계를 ‘시스템1’과 ‘시스템2’로 구분했습니다. 시스템1이 ‘2×2’하면 ‘4’를 떠올리는 것처럼 직관적이고 충동적으로 작동한다면, 시스템2는 깊은 사고와 정신활동 등 노력을 필요로 하죠. 

이 이론을 좀 더 확장하면 커피 산업에도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커피를 그저 저렴한 카페인 음료로 생각하고, 신속한 이윤 추구를 위해 대량생산한 조악한 품질의 원두를 사용해 보편적인 취향의 다수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커피 비즈니스는 시스템1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커피를 하나의 문화로 바라보고, 커피 작물 재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커피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블루보틀은 시스템2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죠. 커피 산업은 현재 네슬레를 필두로 한 인스턴트 커피(제1의 물결), 스타벅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에스프레소 커피(제2의 물결), 블루보틀 등이 이끄는 스페셜티 커피(제3의 물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 속에서 나타난 커피 브랜드 홍수 시대, 커피전문점을 창업했거나 자신의 커피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브랜드의 ‘정수’를 다듬는 것에서 찾아야 할 듯합니다. 블루보틀처럼 말이죠.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joel@ingraf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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