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공포관리이론
공포조건 인지하면 소비 커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백화점 명품매장에 들러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라고 말하는 영화 속 주인공. 사회에 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전재산을 털어 기부하는 사람. 어떤 부류가 더 많을까. 죽음과 위기 앞에 한낱 ‘물질’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론 전자의 사례가 더 많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른바 ‘공포관리이론’이다.

엔데믹에선 오픈런이 뉴 노멀이 될 수도 있다.[사진=뉴시스]
엔데믹에선 오픈런이 뉴 노멀이 될 수도 있다.[사진=뉴시스]

경제·사회적으로 한차례 위기를 겪고 나면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 우리는 이걸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부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11~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 이 단어가 등장했는데, 당시엔 저성장·저물가·저금리 현상이 하나의 기준이 됐다. 지구촌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많은 기관과 기업이 일상회복을 기대하며 ‘뉴 노멀’을 말한다. 그들에게 뉴 노멀은 무엇일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경험한 건 신체적·경제적 위험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요구하는 안전표준이 높아지고, 정비된 인프라를 활용한 변화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모임이 확산하고, 예고 없이 시행된 비대면 교육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여기엔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을 적용하면 예측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공포관리이론은 인간이 죽음을 인지할 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탐구한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죽음과 같은 공포를 인지하거나 경험하면 그것이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을 지키고 내세우기 위해 문화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 한다는 거다. 이런 노력은 물질주의 성향을 부추기고 소비표준을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소비자의 쇼핑이 이전보다 증가했다는 통계가 이런 공포관리이론을 보여주는 예다. 

또 다른 연구들도 이를 방증한다. 일례로 미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보자.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에겐 ‘나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쓰게 하고, 다른 쪽 학생들에겐 ‘나의 치과 방문기’를 써보라고 했다. 그다음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상의 쇼핑실험을 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나의 죽음’이란 에세이를 쓴 학생들이 더 많은 물건을 구입한 거다.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도 죽음이라는 위험을 인지하면 더 비싼 제품을 더 많이 소비한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연구진들은 “죽음이라는 공포조건을 인지한 후의 불안함과 낮아진 자존감을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고가의 물건을 소비하는 것으로 회복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공포를 인지한 후 해외 브랜드 대신 국산 브랜드를 산다는 연구도 있는데, 이 역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위상을 높여 자기 자존감을 보완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외 연구들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죽음과 관련된 공포조건을 인지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명품브랜드에 호의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죽음이나 질병, 전쟁과 같은 공포를 인지하면 물질의 덧없음을 깨달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포를 인지하기 전보다 더 성숙해져서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는 윤리적인 소비를 실천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기부자가 늘고, 기부액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소비행동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다수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은 공포로 인한 불안을 채우기 위해 ‘물질’을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이전보다 과하게 소비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코로나19 국면에서 명품 신상이 불티나게 팔리고, 가격 인상 예고가 나올 때마다 명품매장 앞에 소비자들이 긴 줄을 서는 게 이해된다. 하지만 팬데믹에서 엔데믹(풍토병·endemic)으로 넘어갔을 때도 이런 과소비 문화가 이어진다면, 이같은 오픈런은 ‘뉴 노멀’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 새로운 기준 앞에 우린 서 있다. 

글 =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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