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고소득층 돈 버는 이유 대해부

누군가 말했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양호하다.” 누군가는 또 말했다. “국내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 사실이라면 한국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서민의 가계부채는 갈수록 커지는 걸까.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고소득층의 지갑이 얇아지지 않는 이유는 또 뭘까.

 

■ 서민은 일하고, 고소득층은 자산 굴리고
■ 가계부채 980조원, 규모만큼 질도 문제
■ 한국의 세후지니계수 봐야 양극화 보여
■ 상위 1% 소득, 제대로 집계되고 있나

 

# 이상한 통계1 민간경제연구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은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로데이터(raw data)를 바탕으로 한국의 ‘소득집중도’를 분석했다. 양극화의 실체를 ‘숫자’로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국내 소득 상위 1%의 비중은 전체의 5.2~5.7%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9.5%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었다. 그럼 국내 소득 상위 1%에 부(富)가 집중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

# 이상한 통계2 소득의 불균형 상태를 확인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지수는 ‘지니계수’다. 이는 소득 분포와 인구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지니계수의 결과는 숫자 ‘0~1’에서 나타난다. 0은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은 상태, 1은 한 사람이 소득을 독식한 상태다. 부유층의 소득 점유율이 높을수록 숫자가 커지고,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OECD 국가의 세전稅前 지니계수(세전 급여 기준)는 평균 0.457(이하 2008년 기준)이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0.506, 0.504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하고, 미국은 0.486이다. 한국은 0.344 밖에 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이 결과를 보면 한국의 소득 비중이 OECD 국가 중에선 제법 균등하게 분포돼 있다는 얘기다. 이 또한 무슨 말일까.

지금부터 이상한 통계의 비밀을 한꺼풀씩 벗겨보자. 이를 위해선 ‘오큐파이(Occupy)’ 운동부터 언급해야 한다. 2011년 하반기 ‘우리는 99%’라는 외침이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전했다. ‘소득 상위 1%를 옹호하느라 99%의 삶이 망가졌다’는 게 울림의 메시지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미국에서 터졌듯, 소득 상위 1%에 대한 서민의 절규도 미국에서 울려 퍼졌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미국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수조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월가(Wall street)’에 쏟아 부었다.

월가의 화답은 냉혹했다. 초금리 대출과 주택 압류로 서민을 되레 벼랑으로 몰아세웠다. 이런 와중에도 월가 사람들은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연봉과 성과급을 주머니에 챙겼다. ‘자본주의의 신봉자’ 미국 서민이 ‘Occupy(점령)’라는 선명한 슬로건을 내걸고 월가로 진군한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국내에서도 2011년 ‘오큐파이 운동’이 전개됐다. 이유는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서민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대부분의 서민은 저축할 힘을 잃었다. 소득은 정체된 반면 소비지출이 크게 늘어나서다.

2011년 국내 엥겔지수(가계소비지출 중 식료품비 지출 비율)는 14.2%에 달했다.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식료품 비용은 (소득과 관계없이) 일정 수준 이상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생계비’라서다. 이런 측면에서 엥겔지수가 올라갔다는 건 가계경제가 그만큼 악화됐다는 뜻이다.

 

잔인한 악순환은 여기서 시작됐다. 버는 돈은 비슷한 데(소득정체) 써야 할 돈이 늘어나니(소비지출), 서민은 부채를 활용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시중은행이든 제2금융권이든, 아니면 사채시장이든 빚을 내 소비를 했다. 이런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뚜렷해지고 있다. 국내 가계부채는 올 2분기 현재 980조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만 해도 660여조원이었다. 5년여 만에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가계부채 가운데 카드ㆍ캐피털ㆍ저축은행 등에서 받은 고금리 상품대출이 많다는 것이다. 1차 금융기관에서 돈을 조달하지 못한 서민이 2차, 3차 금융권을 헤매다보니 부채의 질이 떨어진 셈이다. 시중은행의 일반신용대출 금리는 연 4~10%다. 그러나 제2금융권인 카드사의 카드론은 최고 연 28%, 현금서비스는 연 30%에 달한다. 캐피털사의 신용대출 금리 역시 실제로는 30%를 넘는 경우가 많다.

가계대출 1000조 시대 눈앞에

서민경제는 이처럼 세계불황의 회오리에 직격탄을 맞았다. 부유층의 사정은 달랐다. 사상 유례없는 경기침체 속에서도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발표한 ‘한국의 소득 집중도 추이와 국제비교 보고서(2010년·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상위 1%의 월 평균 소득은 2008년 1억8691만원에서 2010년 1억9555만원으로 늘었다. 2008년에는 월 9739만원만 벌어도 소득 상위 1%에 들었지만 2010년엔 1억488만원의 수입을 올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 소득은 정체된 지 오래인데, 부유층은 더 많은 부를 쌓은 셈이다. 왜일까.

답은 쉽게 나온다. 대부분의 서민은 일을 해서 돈을 번다. 근로소득이 주 수입원이다. 소득 상위 1%는 근로소득보다는 ‘자산을 굴려’ 버는 돈이 많다. 김낙년 교수의 보고서를 보면, 2010년 상위 1%의 소득별 구성비는 근로소득(57.4%), 사업·부동산소득(29.7%), 배당소득(9.4%), 이자소득(2.8%)이었다. 전체 소득자 평균과 비교하면 근로소득 비중이 낮은 반면 사업·부동산 소득은 월등히 높았다. 상위 1%의 배당소득은 전체 평균(2.0%)보다 약 4배가 많았다. 이상동 새사연 연구원은 “부유층이 자본을 축적할수록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금융·자산소득까지 빠르게 증가해 부가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과제는 명확하다. 부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대안이 거론된다. 첫째는 ‘낙수효과(trickle down)’다.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落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논리다. 분배보다는 성장,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주장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통계를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산꼭대기에 고인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부 집중 가속화, 해결책은…

둘째 대안은 현재의 ‘소득 재분배 정책’을 손질하는 것이다. 조세제도와 재정지출을 잘 활용해 부유층의 소득을 효율적으로 나누자는 논리다. 그러나 이 역시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 “소수에게 거둬 다수에게 나눠주는 건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부닥치기 십상이다. “국내 지니계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양호하기 때문에 조세제도를 가다듬을 필요가 없다”는 반박도 거세다. 옳은 주장일까.

 

▲ 고소득층의 소득을 정확하게 집계하는 것이 양극화 해소의 첫걸음이다. (사진: 뉴시스)

이제 ‘이상한 통계’의 비밀을 풀 때가 됐다.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 양극화는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는 OECD의 세전지니계수다. 하지만 세후稅後 지니계수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OECD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세전 지니계수는 0.504이지만 세후 지니계수는 0.295에 불과하다. 소득 재분배 효과는 41.5%에 이른다. 영국의 세전·세후지니계수도 0.506, 0.342로 차이가 크다. 32.4%의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었다.

 

한국은 정반대다. 세전 지니계수는 0.344로 낮지만 세후 지니계수는 0.315로, OECD 평균(0.314)보다 높다. 소득 재분배 효과는 8.4%에 불과하다. 국내 조세제도와 재정지출이 양극화 해소에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물은 진짜 아래로 흐르나

문제는 선진국보다 양호하다는 국내 세전지니계수마저 신뢰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세전 지니계수는 특성상 상위 1%의 소득이 제대로 반영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런데 국내 상위 1%의 소득은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세전 지니계수의 근거로 활용하는 상위 1%의 소득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통해 집계된다. 이는 전수조사가 아니다.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총조사’에서 뽑아낸 ‘1만 가구’를 표본으로 설문조사를 돌린 결과다. 통계청의 조사원들이 설문지를 들고 1만 가구를 일일이 방문해 소득을 집계하는 것이다. 상상 한번 해보자. 조사원들이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맘 놓고 들어가 부유층의 소득을 꼼꼼하게 조사할 수 있겠는가. 이는 능력부족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이상동 연구원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않으면 부유층의 소득을 알아내기 쉽지 않다”며 “부유층 대부분은 소득 관련 설문조사를 기피하는 성향이 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위 1%의 소득 중엔 이자·배당수익이 많다”며 “이런 수익은 대부분 면세이기 때문에 (고소득자가) 관련 소득을 축소해 보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이 말에는 소득 상위 1%에 대한 감정이나 울분이 섞여 있지 않다. 김낙년 교수의 보고서에도 비슷한 지적이 기록돼 있다. 그 첫째다. “2010년 가계동향조사에서 파악된 가장 소득이 많은 가구주의 연소득은 1억887만원이었다. 그런데 금융과세자료를 분석하면 소득 상위 0.1%에 들기 위해선 1억3496만원이 필요하다. 최상위 소득자의 상당수가 가계조사에서 배제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둘째 지적을 보자. “2010년 가계동향조사에서 파악된 전체 가구의 이자·배당소득은 각각 2조1409억원과 3296억원이었다. 이는 국세청의 소득세 자료(2010년 「연보」)에서 파악된 이자·배당소득 35조3304억원, 13조2636억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이상한 통계의 비밀을 풀어봤다. ‘국내 소득 상위 1%의 비중이 5.2~5.7%에 불과하다’는 결과는 가계동향조사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세전 지니계수가 가장 양호하다’는 결과 역시 상위 1%의 소득을 정확하게 집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 국내 상위 1%의 소득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해부하려 하지 않는다. 상위 1%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무슨 근거로 양극화를 논의하고 해소하려는지 의문이다.

여경훈 새사연 연구원은 “상위 1%의 소득을 보다 정교하게 분석하려면 국세청의 소득세 신고자료, 근로복지공단의 고용보험통계 등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정부는 연구자료 명목으로도 이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베일에 싸여 있는 상위 1%의 소득

‘상위 1%의 소득을 정밀하게 파악하자’는 주장은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아니다. 양극화 해소의 첫걸음이다. 나라살림이 더 탄탄해질 가능성도 크다. 숨어 있는 상위 1%의 소득을 찾아내면 세수가 확대되기 때문이다.세계 각국에선 ‘상위 1%의 소득’을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와 엠마뉴엘 새츠는 미국 상위 1%의 소득 비중 추세를 1913년까지 역추적해 ‘U자형 곡선을 띤다’ 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OECD도 지난해 11월 회원국 상위 1%의 소득 비중을 추정·발표했다.

이상동 연구원은 “두 연구 모두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렇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한 법이다. 상위 1%의 소득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윤찬 기자 chan4877@ thescoop.co.kr|@chan4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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