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작업을 하니 눈이 뻑뻑합니다. 바람 좀 쐴 겸 옥상 정원을 가봅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불꺼진 사무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텅빈 사무실에 누군가 찾아옵니다. 노을입니다. # 서쪽 하늘이 노을을 만들어 유리창을 물들입니다. 무채색 창문이 캔버스로 바뀝니다. 빨간색, 다홍색, 진홍색, 노란색, 연두색…. 다양한 물감을 풀어놓은 그림 같습니다. # 창문 사이로 그림자가 비칩니다. 야근인가 봅니다. 동지가 생긴 기분입니다. 안에 있는 저분은 알까요? 지금 하늘이 얼마나 이쁜지 말이죠. 오늘도 밤늦도록 작업을
# 풍경 사진을 찍을 때 골든아워를 활용하라고 합니다. 골든아워는 해가 뜨고 난 후, 그리고 해가 지기 전 한시간가량을 말합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노랗게 물드는 시간이죠. 하루 중 세상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할 때입니다. 사진가들은 이 시간의 빛을 노립니다. # 사진가와 빛은 가깝지만 먼 관계입니다. 사진가는 늘 빛을 쫓지만, 빛은 잘도 피해 다닙니다. 자연은 우리의 의도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그러다 때론 생각지 못한 순간에 빛이 찾아와 주기도 합니다. 사진 속 이날도 빛이 불쑥 찾아온 몇 안 되는 하루였습니다.
# 처음 사진을 배울 때 흥미로운 게 두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흐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흐름이었습니다. 흐림은 초점입니다. 초점이 맞은 곳은 선명하고 나머지 부분은 흐릿하게 표현되는 사진을 보며 신기해했죠. 배경흐림 혹은 아웃포커싱이라고 불리는 기법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웃포커싱은 콩글리시입니다. 영어권에서는 shallow depth of field라고 씁니다.# 흐름은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은 자동차나 별빛의 긴 궤적을 담아내고 성난 파도를 잔잔한 물결로 만들었습니다. 장노출이라는 촬영 기법입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두는
# “온실 속 화초보다 들판의 잡초처럼 커라.” 영화나 소설의 제목 같기도 한 이 말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종종 듣던 말입니다. 어느새 어른이 된 지금, 나를 돌아봅니다. 화초로 컸을까? 잡초로 컸을까? 어떤 이에 비하면 잡초 같기도, 또 다른 이에 비하면 온실 속 화초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 돌 틈에 피어난 민들레가 반짝입니다. 보이진 않지만, 저 틈 속 어딘가에 생명의 뿌리를 내렸을 겁니다. 민들레는 생명력이 강합니다. 보도블록, 아스팔트 틈새나 시멘트 담 사이에서도 빼꼼 고개를 내밉니다.
# 2년 1개월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전면 해제됐습니다. 사적 모임 제한과 영업시간 규제가 풀리며 일상 회복에 한걸음 다가간 모습입니다. # 자연스럽게 여행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습니다. 지난 한달간 해외 항공권 판매량이 10배나 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날아가는 항공기의 모습만 봐도 괜스레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듭니다. # 언젠가는 저 비행기를 타고 달나라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상상까지 스치는 걸 보니, 그토록 바랐던 일상이 마음을 들뜨게 하는 모양입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설렘을 속삭이듯 말이죠.
# “그래 너는 초봄이다. 나는 이제 늦가을 정도 된 것 같구나.” 열살 남짓부터였을까요. 산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주말마다 등산을 다녔습니다. 산길을 걸을 때면 아버진 사계절을 인생에 비유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당시 늦둥이 막내 꼬맹이였던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잘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다시 봄입니다. 회색과 갈색의 세상은 노랗고 하얗게 물들어갑니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꽃을 피운 벚나무 아래 발걸음을 멈춥니다. 햇살을 받아 하늘거리는 벚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까르르 까르르…”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
# 산을 깎은 다음 뚝딱뚝딱. 아파트가 올라갑니다. 크레인이 사라진 걸 보니 어느새 다 올라갔나 봅니다. 산비탈 층층이 있던 낮은 집들은 사라지고 이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섭니다. 맞은편 바위산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이니 또 얼마나 설렐까 싶습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입장마다 다르게 보입니다.# 등굣길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저 멀리 꼭대기 회색벽에서 무언가 왔다갔다 합니다. 이내 건물벽이 조금씩 바뀌어갑니다. 그렇습니다. 한 작업자가 외벽에서 페인트
# 2007년 12월 31일 밤 10시 속초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달랑 카메라 가방만 들고 떠난 즉흥여행이었죠. 버스 속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속초에서 새해를 맞이하곤 또다시 고성으로 향했습니다. 금강산을 볼 수 있다는 통일전망대에 가고 싶었지요. # 그런데 아뿔싸. 민통선 지역인 통일전망대는 차가 없으면 출입 불가였습니다. 방문객 중 한 노부부께서 제 사정을 듣고 동승을 허락했습니다. 고마운 인연입니다. # 새해라 그럴까요.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풍경이라 그럴까요. 하늘과 바다는 유독 파랬습니다
# 아쿠아리움을 찾았습니다. 평소 TV나 책에서만 보던 철갑상어와 바다거북, 다양한 물고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대한 것은 벨루가로 불리는 흰고래입니다.# 파란 물결 속에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벨루가를 만났습니다. 아쿠아리움의 마스코트라서 그럴까요? 이미 많은 사람이 수족관 앞에 모여있네요.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손짓으로 벨루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벨루가는 사람들의 환호에 호응하듯 바쁘게 헤엄치며 돌아다닙니다. 벨루가가 수족관 유리면까지 다가올때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벨루가 수족
# 대학생 때입니다. 실습 과제가 많다 보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름엔 해가 지면 오히려 살 만했지만 겨울은 반대입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추위는 온몸으로 스며들었습니다. # 난로 하나 없는 골방 같은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따스한 온기가 그리웠습니다. 긴 밤이 지나고 해가 뜰 때쯤이면 ‘광합성’을 하러 복도 창가로 종종걸음을 칩니다. 그곳에서 비둘기처럼 몸을 웅크린 채 태양을 기다렸습니다. 떠오르는 태양 빛을 쬐며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면 따스한 온기가 햇살처럼 몸에 퍼져나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Let it go, let it goCan’t hold it back anymore내버려둬더이상 참을 수 없어# 한 소절만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아시겠지요. ‘Let it go’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불렀던 주제곡입니다. 2014년 개봉 당시 어른들은 물론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아기들도 “레리꼬 레리꼬” 하며 따라 불렀던 메가 히트곡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참 좋아했죠. 자동차에서 겨울왕국 주제곡을 틀어놓고 온 가족 다 함께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주제곡 Let it go는 엘사가 저주라
실시간 벽난로 비디오 3시간19,532,675회장작타는 소리, 모닥불 8시간 조회수 3,588,724회공부할 때 듣는 장작 타는 소리3,387,911회[2022년 1월 6일 기준]# 유튜브에 ‘불멍’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과 조회수입니다. 영상을 통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조회수라니 불멍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합니다. # 불멍은 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입니다. 캠핑족, 차박족이 늘어나며 불멍도 함께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정신학과 교수는 "멍 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두뇌를 깨우고 명쾌하게
#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어릴 적 설렜던 날입니다. 우열을 가리긴 힘들지만 그중 가장 두근거렸던 날은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였습니다. 미지의 인물 산타할아버지가 갖다주시는 ‘랜덤 선물’의 신비함 때문입니다. # 크리스마스이브는 잠들기 힘든 날입니다. 어떤 선물을 갖다주실까란 설렘,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겼을까란 궁금함이 가득했습니다. 7살이었는지 8살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전 엄마, 아빠에게 선언했습니다.“오늘밤 산타할아버지가 올 때까지 안 잘 거야.” 그러곤 불 꺼진 방에서 베개를 안고 벽에 기댔습니다. ‘오
# 얼마 전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온 가족이 검사를 받으러 선별 진료소를 찾았습니다. 확진자가 가파르게 늘어서인지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인원을 보니 400명이 넘더군요. 길어진 대기시간만큼 쌀쌀해진 날씨에 몸이 절로 움츠러듭니다. # 문득 온종일 밖에서 애쓰는 의료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기순번을 알려주는 분, 차례로 줄을 안내하는 분, 신분을 확인하고 검사를 진행하는 분까지…. 모두 코로나19란 울타리에 갇힌 듯 답답해 보입니다. # 석양빛 그림자가 벽에 철창을 만
# 부슬비가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비를 피해 정류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한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밖에 우뚝 서 계십니다. 뒤로 빈 광고판이 보입니다. 하얀 배경, 마치 스크린 같습니다. # 아줌마의 실루엣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어딘가 좀 어색합니다. 실루엣을 가만 보니 마스크가 없습니다. 문득 사진을 촬영한 때가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그땐 우리가 코로나19를 경험하기 전입니다. # 마스크 없는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저기 저 실루엣처럼 마스크 쓰지 않은 얼굴로 일상을 보낼 날이 언젠
# 사진의 영어 단어인 포토그래피의 어원은 빛그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으로 불립니다. 그만큼 사진에선 빛이 중요합니다. 빛이 재밌는 건 똑같지 않다는 겁니다. 실내·실외 다르고 계절에 따라 하루 중 어느 시간대냐에 따라 빛의 각도, 색감 등이 달라집니다. # 요즘 공장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에 지어진 공장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공장이 멈춘 지는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지금 ‘시간이 정지한’ 그곳에 있습니다. # 정적이 흐르는 아침입니다. 설명
# 하늘에서 내리는 예쁜 쓰레기, 바로 눈입니다. 눈이 더는 눈사람을 만드는 놀이감이 아니란 걸, 데이트할 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던 낭만의 존재가 아니란 걸 군대에서 알았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지역은 추석에서 시작해 식목일까지 눈이 내린다는 전설이 있던 곳, 철원이었습니다. 그만큼 겨울은 춥고 길었습니다. # 군 시절, 부대의 특성상 제설 작업이라 하지 않고 제설 작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방탄조끼, 방탄헬멧을 착용하고 총까지 메고 제설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빗자루로 길을 내고 넉가래로 밀어냅니다. 지상에서 산꼭대기 있는 부대까
# 어릴 때 살던 동네엔 뒷산이 바로 붙어 있었습니다. 뛰어노는 영역은 동네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뒷산까지 넓어졌죠. 겨울에 눈이 오면 비닐봉지를 깔고 눈썰매를 탔습니다. 여름에는 이것저것 잡으러 수풀을 해치고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뒷산은 저에게 재밌는 놀이터였습니다. # 매미, 나비, 방아깨비, 메뚜기, 개구리, 잠자리…. 채집통에 넣을 수 있는 크기라면 눈에 보이는 대로 몽땅 잡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개중엔 잡기 까다로운 녀석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마귀였습니다. 생긴 것부터 무섭게 생긴 녀석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 촬영하느라 종일 걸어 다니니 어깨가 뻐근합니다. 일이 몰아칠 때면 하늘 한번 보는 여유도, 선선히 불어오는 가을바람도 느끼기가 쉽지 않네요. 한숨 돌릴 요량으로 벤치를 찾았습니다.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납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들이밀다 다시 벌떡 일어섰습니다. 무언가 빼꼼 올라와 있습니다. 이름 모를 식물이 의자 틈새로 머리를 내밀었네요.# 한발자국 떨어져 바라봅니다. 마지막 남은 오후 햇살을 온 힘을 다해 받아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풀씨가 날아와 하필 그늘진 의자 밑에 자리를 잡았지만, 잘 컸습니다. 가을을 맞이한 지금, 하늘을
# “나 내일부터 6시에 일어날 거야!” 저의 외침에 아내는 ‘또 그 소리군’이란 표정을 짓습니다. 사실 지난 10년간 틈만 나면 외쳐왔던 말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겠다는 저의 다짐은 번번이 깨지고 말았습니다.양치기 소년이 따로 없습니다. 아침형 인간을 꿈꾸지만, 아침 시간에도 꿈나라입니다. 그러니 아내의 표정에 대꾸할 말이 없습니다. # 이런 저라도 새벽에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일 때문입니다. 촬영이 있으면 해뜨기 전 벌떡벌떡 잘도 일어납니다. 이게 바로 입금의 힘일까요?물론 책임감도 한몫합니다. ‘나는